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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2D 액션이 거대한 IP가 되기까지 — 허민과 네오플의 던전앤파이터 도전

celebpilot 읽는 시간 약 25분

포브스코리아의 「허민 전 네오플 대표, 20년 안에 100조원쯤 벌고 싶다」​와 허민 전 대표의 여러 인터뷰를 찾아보면서 가장 흥미롭게 느껴진 것은 던전앤파이터라는 성공작 하나보다 그 이전의 과정이었습니다. 지금은 던전앤파이터가 한국을 대표하는 장수 게임 IP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지만, 네오플이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렸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1년 네오플을 창업한 허민은 여러 사업과 게임을 시도했고, 던전앤파이터를 내놓기 전까지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오히려 던전앤파이터는 이미 성공이 보장된 회사가 안정적으로 만든 작품이라기보다, 여러 차례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작은 개발사가 다시 한번 승부를 걸었던 게임에 가까웠습니다. 포브스코리아 역시 허민의 사업 인생을 설명하면서 던전앤파이터가 그의 인생을 바꾼 핵심 사업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당시 게임 시장의 주류와 반대편에 가까웠던 2D 횡스크롤 액션에 승부를 걸었다는 점입니다. 화려한 3D 그래픽과 대규모 MMORPG가 게임 산업의 미래처럼 받아들여지던 시기에 오락실에서 즐기던 액션게임의 손맛을 온라인으로 옮기겠다는 선택은 상당히 이례적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비주류 선택은 네오플의 운명을 바꿨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단순히 “허민이 과감하게 도전해서 던전앤파이터를 성공시켰다”​고 정리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허민은 창업자이자 경영자로서 네오플이 새로운 게임에 계속 도전할 수 있도록 방향과 자원을 마련했지만, 던전앤파이터의 실제 게임성과 세계관을 만들어낸 것은 김윤종 초대 디렉터를 비롯한 네오플 개발진이었습니다. 이후 중국에서의 폭발적인 성장과 장기 운영에는 넥슨과 텐센트의 역할도 더해졌습니다.

따라서 던전앤파이터의 성공은 한 명의 천재 창업자 이야기라기보다 창업자의 위험 감수, 개발팀의 독창적인 게임 설계, 적절한 퍼블리싱 파트너, 해외시장 확장이 맞물린 결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네오플은 처음부터 게임회사로 출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허민은 서울대학교 응용화학부에 입학했고, 2000년에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학생운동 중심이던 대학가에서 비교적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며 이름을 알렸지만, 졸업 이후 그가 선택한 길은 정치도 화학 관련 대기업도 아니었습니다.

2001년 친구들과 함께 네오플을 창업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초기 네오플은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게임 개발사와도 조금 달랐습니다. 2005년 허민 대표를 인터뷰한 전자신문에 따르면 창업 초기에는 고주파를 이용한 잠깨우기 장치를 만들기도 했고, 이후 온라인에서 사람을 만나는 아이디어를 게임으로 발전시키면서 본격적으로 게임 사업에 들어갔습니다.

초기 대표작은 ‘캔디바’였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요소를 온라인 게임과 결합한 서비스였는데, 2005년 전자신문 보도를 보면 네오플은 캔디바를 기반으로 회원 700만 명 이상을 확보한 중견 게임포털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이 대목은 흔히 알려진 “허민은 18개의 게임을 만들었지만 모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조금 더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캔디바처럼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서비스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후 여러 신작이 던전앤파이터와 같은 규모의 성공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후대 인터뷰와 보도에서 허민은 던전앤파이터 이전에 여러 게임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회사가 약 30억 원의 빚을 안게 됐다고 회고했습니다. 일부 보도에서는 이 기간의 실패작을 18개로 설명합니다.

즉 네오플의 초기 역사는 아무것도 되지 않다가 19번째 게임 하나가 갑자기 성공한 이야기라기보다, 캔디바라는 초기 성과를 발판으로 여러 장르를 실험했지만 후속 대형 흥행작을 만들지 못하면서 점점 더 큰 압박을 받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실패가 쌓이자 오히려 다른 게임을 만들 필요가 생겼습니다

2000년대 초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리니지를 비롯한 MMORPG가 산업의 중심에 자리 잡았고, 새로운 게임을 만들려는 개발사들도 3D 그래픽과 대규모 온라인 세계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네오플이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하던 시기도 이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네오플이 선택한 방향은 정반대에 가까웠습니다. 최신 3D 그래픽을 앞세우기보다 1990년대 오락실에서 즐기던 벨트스크롤 액션게임을 연상시키는 2D 그래픽과 횡스크롤 전투를 선택했습니다.

네오플이 2023년 공개한 던전앤파이터 다큐멘터리 소개에서도 당시 상황이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됩니다. 3D 그래픽과 MMORPG가 게임업계의 주류였던 시기에 던전앤파이터는 2D 벨트스크롤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비주류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개발진은 오락실 액션게임에서 느낄 수 있었던 조작감과 손맛을 온라인 환경에서 구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오히려 이 선택이 던전앤파이터의 강력한 차별점이 됐습니다.

3D MMORPG끼리 그래픽과 규모를 놓고 경쟁하는 시장에서 네오플까지 똑같은 게임을 만들었다면 더 큰 자본과 인력을 갖춘 회사들과 정면으로 경쟁해야 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횡스크롤 액션을 선택하면서 비교 대상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김윤종 초대 디렉터를 비롯한 초기 개발팀은 오락실 액션게임 특유의 즉각적인 조작감과 캐릭터별 개성, 온라인 RPG의 성장 요소를 결합하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네오플 공식 자료에서도 초기 던전앤파이터 개발진이 캐릭터의 설정과 몰입감, 직접 조작하는 손맛을 만드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던전앤파이터의 중요한 특징이 만들어졌습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복잡한 설명을 모두 이해하지 않아도 방향키로 움직이고 공격 버튼을 눌러 적을 때리는 재미를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직업을 선택하며 장비를 모으는 RPG 구조가 있기 때문에 오래 플레이할 이유도 존재했습니다.

진입은 쉽지만 깊이는 계속 쌓이는 구조였습니다.

던전앤파이터의 성공은 출시 직후부터 숫자로 나타났습니다

던전앤파이터는 2005년 8월 10일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반응이 상당히 빨랐다는 사실입니다. 네오플 공식 자료에 따르면 정식 출시 후 불과 1시간 만에 동시접속자 1만 명을 넘어섰고, 같은 해 12월에는 5만 명, 2006년에는 1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화려한 3D 게임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 오락실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비주얼이 이용자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이 사례를 보면 기술적으로 가장 최신인 제품이 반드시 시장에서 가장 좋은 제품은 아니라는 사실도 생각하게 됩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경험을 정확하게 제공한다면 오래된 형식도 새로운 상품이 될 수 있습니다.

던전앤파이터의 2D 그래픽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게임이 등장한 2005년을 기준으로 2D 횡스크롤 방식은 기술적인 최첨단이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네오플은 그 익숙한 방식을 온라인 RPG와 연결했습니다. 이용자는 오락실에서 즐기던 액션의 손맛을 느끼면서 동시에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다른 이용자와 함께 플레이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경험을 새로운 서비스 구조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허민의 역할과 개발팀의 역할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업자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에서는 회사의 모든 성공을 대표 한 사람에게 돌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던전앤파이터 사례에서는 이 부분을 조금 더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허민은 네오플을 창업했고 여러 실패에도 회사가 새로운 게임을 계속 개발하도록 이끈 경영자였습니다. 2005년 전자신문 인터뷰에서도 그는 회사가 벌어들인 자금을 다시 게임 개발에 투입하면서 새로운 작품에 계속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던전앤파이터의 세부 게임 디자인과 캐릭터, 세계관, 전투 시스템을 허민 혼자 만들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네오플의 공식 던전앤파이터 다큐멘터리에는 초대 디렉터였던 김윤종을 비롯해 여러 전·현직 개발자가 등장합니다. 네오플 역시 던전앤파이터가 개발팀의 장기간에 걸친 시행착오와 운영을 통해 성장해온 IP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허민에게서 주목할 부분은 세부 게임 디자인보다 회사가 실패를 반복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형태의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계속 판을 벌였다는 점에 더 가깝습니다.

좋은 창업자가 반드시 모든 제품을 직접 설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시장에 도전할지 결정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자원을 배분하며, 실패했을 때 다음 시도를 할 수 있는 조직을 유지하는 것도 창업자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허민과 네오플의 관계를 볼 때도 이 관점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던전앤파이터를 진짜 거대한 IP로 만든 것은 ‘운영’이었습니다

온라인게임은 출시했다고 완성되는 상품이 아닙니다.

패키지 게임은 완성된 제품을 판매하고 끝날 수 있지만 온라인게임은 출시 이후 이용자 반응에 맞춰 새로운 캐릭터와 던전, 아이템,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추가해야 합니다. 운영에 실패하면 초기 흥행작도 빠르게 이용자를 잃을 수 있습니다.

던전앤파이터 역시 출시 이후 수많은 변화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네오플은 새로운 직업과 던전, 장비를 꾸준히 추가했고 이용자들이 장기간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갔습니다. 반대로 운영 과정에서 게임 밸런스를 크게 흔든 사건도 있었고, 이후 개발팀이 이용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시스템을 다시 손보는 과정도 거쳤습니다.

네오플 공식 자료는 던전앤파이터의 장기 흥행을 설명하면서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캐릭터의 개성, 새로운 콘텐츠 도입을 중요한 요소로 언급합니다. 2020년에도 네오플은 던전앤파이터가 15년 동안 장기 흥행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으로 대규모 업데이트와 이용자 소통, 신규·복귀 이용자를 위한 지속적인 개선을 꼽았습니다.

이 부분은 던전앤파이터를 단순한 ‘대박 게임’과 구분하는 지점입니다.

좋은 게임을 한번 만드는 것과 20년 넘게 이용자가 돌아오는 게임을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진출 직전에 이뤄진 중요한 선택

던전앤파이터의 기업적 가치를 크게 바꾼 것은 중국 시장이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시점을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8년 6월 무렵 던전앤파이터의 중국 서비스 계약이 텐센트와 체결됐고, 같은 해 중국에서 ‘지하성과용사’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한 달 뒤인 2008년 7월 10일 넥슨이 허민 대표와 기타 주주가 보유한 지분을 인수해 네오플의 경영권을 확보했습니다.

즉 중국 성공의 씨앗이 된 텐센트 계약은 허민이 네오플을 이끌던 시기에 만들어졌지만, 실제 중국 서비스의 폭발적인 성장과 장기간의 사업 확장은 넥슨 인수 이후에 본격화됐습니다.

이 구분이 중요합니다.

“허민이 중국에서 던전앤파이터를 대성공시켰다”고 표현하면 이후 네오플 개발진과 넥슨의 글로벌 퍼블리싱, 텐센트의 현지 서비스 역량을 지나치게 축소하게 됩니다.

반대로 허민의 역할을 전혀 빼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네오플이 넥슨에 편입되기 직전 텐센트와 중국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던전앤파이터가 세계 최대 게임시장 가운데 하나로 들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국 성공은 허민 시절 마련된 진출 기반 위에 네오플의 개발력, 넥슨의 글로벌 사업 역량, 텐센트의 중국 플랫폼이 결합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넥슨은 왜 네오플을 인수했을까요

2008년 넥슨의 네오플 인수도 던전앤파이터의 가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넥슨은 당시 허민 대표와 기타 주주의 지분을 합쳐 50% 이상을 확보하면서 네오플의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넥슨은 인수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사가 국내외 시장에서 축적한 온라인게임 퍼블리싱 역량과 네오플의 게임 개발력을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후 NHN이 보유하고 있던 네오플 지분 40%도 넥슨에 매각하면서 네오플은 넥슨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됐습니다. 당시 NHN의 40% 지분 거래금액만 903억 원이었습니다.

네오플 입장에서는 게임을 만드는 개발력은 있었지만 글로벌 서비스와 대규모 이용자 운영에서는 넥슨이 가진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게 됐고, 넥슨 입장에서는 이미 국내에서 성공 가능성을 증명한 던전앤파이터라는 강력한 IP를 확보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거래는 한국 게임업계에서 성공적인 M&A 사례 가운데 하나로 자주 언급됩니다.

허민이 회사를 매각한 직후 던전앤파이터의 중국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훨씬 큰 돈을 벌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뒤따랐습니다. 실제로 2011년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허민은 자신이 네오플을 계속 보유했다면 더 큰 게임기업이 됐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에서는 결과를 알고 난 뒤의 판단과 당시의 의사결정을 구분해야 합니다.

2008년 당시에는 중국 사업이 이후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지 누구도 확정적으로 알 수 없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네오플이 던전앤파이터라는 성공작을 만들었고, 넥슨은 그 IP의 장기적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에서 던전앤파이터는 완전히 다른 규모의 게임이 됐습니다

던전앤파이터는 중국 진출 이후 네오플이라는 회사의 규모 자체를 바꿨습니다.

네오플 공식 자료에 따르면 중국 서비스에서 던전앤파이터의 최고 동시접속자 수는 500만 명에 달했습니다. 2018년에는 던전앤파이터의 성과를 기반으로 네오플이 영업이익 1조 원을 기록할 정도로 거대한 수익원이 됐습니다.

2022년 네오플이 공개한 자료에서는 던전앤파이터가 전 세계 누적 이용자 8억5,000만 명, 누적 매출 180억 달러​를 기록한 게임으로 소개됐습니다. 이 숫자는 허민이 회사를 떠난 뒤 10년 이상 네오플과 넥슨이 게임을 운영하고 확장하면서 만들어진 결과이므로, 허민 개인의 성과라기보다 그가 창업한 회사에서 탄생한 IP가 얼마나 큰 장기 자산으로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2024년에는 던전앤파이터 모바일까지 중국에 출시됐습니다. 원작이 2005년에 등장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나의 게임에서 만들어진 IP가 약 20년 뒤에도 새로운 플랫폼과 시장에서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게임 비즈니스의 독특한 특성이 드러납니다.

게임은 흥행하면 영화나 드라마처럼 일회성 매출에 그치지 않고 캐릭터와 세계관, 후속작, 모바일게임, 라이선스 상품 등으로 수명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IP 하나가 회사의 수익 구조를 수십 년 동안 바꿀 수도 있습니다.

네오플이 던전앤파이터 이후 단순한 게임 개발사가 아니라 거대한 IP를 보유한 개발사로 평가받게 된 이유입니다.

던전앤파이터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남들과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던전앤파이터 이야기를 쉽게 정리하면 “MMORPG가 유행할 때 남들과 다르게 2D 액션게임을 만들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남들과 다른 제품을 만든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시장과 지나치게 다른 상품은 소비자에게 선택받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던전앤파이터가 성공한 이유는 단순히 달랐기 때문이 아니라 익숙한 재미를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했기 때문에 가깝습니다.

오락실 세대에게 횡스크롤 액션은 익숙했습니다. 적을 때렸을 때의 타격감이나 여러 명이 함께 적을 물리치는 방식도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네오플 개발진은 이 친숙한 재미에 온라인 RPG의 캐릭터 성장과 아이템 수집,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결합했습니다.

즉 완전히 새로운 재미를 발명하기보다 검증된 재미의 조합을 바꾼 것입니다.

사업에서도 참고할 만한 지점입니다.

시장을 바꾸는 제품이 반드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소비자가 이미 좋아하는 요소를 찾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카테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실패를 견뎠다는 표현도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허민의 사업 이야기를 다루는 기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18번 실패하고 19번째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분명 강렬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업적인 관점에서는 단순히 실패를 참았다는 사실보다 실패할 때마다 다른 시도를 계속할 수 있는 회사 구조를 유지했다는 점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2005년 던전앤파이터 출시를 준비하던 시기에도 네오플은 던전앤파이터 하나만 만들던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전자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네오플은 여러 개발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신야구와 던전앤파이터 등 서로 다른 장르의 게임을 동시에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실험 가운데 하나가 시장과 강하게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스타트업이나 콘텐츠 기업에서 실패 자체를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패는 돈과 시간을 소모합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무엇이 통하지 않는지 배우고, 다음 시도에서 다른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느냐입니다.

네오플은 여러 시행착오 끝에 ‘우리가 남들과 같은 게임을 만들어서는 이기기 어렵다’​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던전앤파이터에서는 그 선택이 시장과 맞아떨어졌습니다.

허민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던전앤파이터 이후에도 있습니다

허민은 2008년 네오플을 넥슨에 매각한 뒤 게임업계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이후 버클리 음대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창단했으며, 소셜커머스 기업 위메프에도 대규모 투자를 하는 등 전혀 다른 영역의 사업과 프로젝트에 계속 도전했습니다.

포브스코리아 인터뷰 제목인 “20년 안에 100조원쯤 벌고 싶다”​는 표현 역시 이런 성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후의 사업들이 모두 네오플만큼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당한 비용을 쓰고 성과를 거두지 못한 도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허민을 단순히 ‘던전앤파이터를 만든 성공한 게임 창업자’​라고만 설명하는 것보다, 확신이 생긴 분야에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직접 뛰어드는 창업가로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과감한 도전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네오플의 역사만 보더라도 여러 시행착오 가운데 던전앤파이터라는 하나의 거대한 성공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허민의 이야기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제가 네오플 사례에서 가장 눈여겨본 부분

처음에는 저도 던전앤파이터의 성공을 ‘남들이 MMORPG를 만들 때 2D 액션게임을 선택한 역발상’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자료를 조금 더 찾아보니 실제로 더 흥미로운 부분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네오플은 2001년 창업 이후 캔디바로 초기 이용자를 확보했지만 후속 게임을 연달아 성공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회사의 재무적 부담도 커졌고, 던전앤파이터 역시 당시 업계의 주류와는 거리가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개발팀은 유행하던 대규모 3D MMORPG를 어설프게 따라가기보다 자신들이 잘 이해하는 오락실 액션의 재미를 온라인 환경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허민은 회사가 그런 실험을 할 수 있도록 계속 자원을 투입했습니다.

게임이 성공한 뒤에도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국내 퍼블리싱 파트너를 활용했고, 중국에서는 텐센트와 계약했으며, 결국 회사 자체는 넥슨에 넘겼습니다.

이 흐름을 보면 네오플의 성장은 한 가지 천재적인 판단보다 각 단계에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파트너의 강점과 연결한 과정에 더 가깝습니다.

좋은 게임을 만드는 개발력은 네오플에 있었고, 중국 시장에 접근하는 플랫폼은 텐센트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글로벌 온라인게임 운영과 자본력에서는 넥슨이 강했습니다.

그 조합이 던전앤파이터라는 하나의 게임을 거대한 사업으로 확장했습니다.

온라인 사업에서도 참고할 수 있는 네오플의 방식

게임회사의 이야기이지만 온라인 사업에서도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경쟁이 심한 시장에서 모두와 같은 기준으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네오플이 대형 게임사와 그래픽 규모로 경쟁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만들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신 자신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액션성과 조작감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두 번째는 상품을 만드는 것과 상품을 키우는 능력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좋은 게임을 개발했다고 중국에서 자동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지 플랫폼과 운영 능력이 필요했고, 네오플은 텐센트라는 강력한 파트너를 선택했습니다.

온라인 판매에서도 비슷합니다. 좋은 상품을 확보하는 능력과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능력, 광고를 운영하는 능력, 물류를 관리하는 능력은 서로 다릅니다. 모든 것을 직접 잘하기 어렵다면 자신의 핵심 경쟁력은 내부에 남겨두고 부족한 부분에서는 좋은 파트너를 찾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하나의 성공 상품을 일회성 매출로 끝내지 않는 것입니다. 던전앤파이터는 출시 20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캐릭터와 콘텐츠, 모바일게임과 후속 프로젝트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사업에서도 잘 팔린 상품 하나가 발견됐을 때 단순히 재고를 더 가져오는 데서 끝내기보다, 그 고객이 왜 그 상품을 선택했는지를 분석하고 연관 상품이나 브랜드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에서는 이것을 IP라고 부르고, 일반 소비재에서는 브랜드 자산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기본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마치며

허민과 네오플의 이야기를 “18번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아 던전앤파이터를 성공시켰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매우 극적이지만, 실제 사업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네오플은 2001년 창업 이후 여러 종류의 서비스를 실험했고, 후속 대형 흥행작을 만들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게임업계의 주류였던 3D MMORPG를 따라가기보다 2D 횡스크롤 액션이라는 다른 방향을 선택했고, 네오플 개발진은 오락실 액션의 손맛과 온라인 RPG의 성장 구조를 결합했습니다.

2005년 등장한 던전앤파이터는 출시 직후 빠르게 이용자를 확보했고, 2008년에는 중국으로 진출했습니다. 같은 해 넥슨이 네오플을 인수한 뒤에는 네오플의 개발력과 넥슨의 글로벌 사업 역량, 텐센트의 중국 플랫폼이 결합되면서 게임의 규모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오늘날 던전앤파이터가 기록한 수억 명의 누적 이용자와 수백억 달러 규모의 누적 매출은 허민 한 사람의 성과라기보다 그가 시작한 회사와 IP가 여러 세대의 개발자와 파트너를 만나 장기간 성장한 결과입니다.

제가 이 사례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도 단순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닙니다.

실패한 뒤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남들과 비슷한 게임을 더 크게 만드는 대신 완전히 다른 재미를 선택했고, 자체 역량만으로 해외시장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현지의 강력한 파트너를 활용했으며, 게임이 성공한 뒤에는 회사를 더 오래 보유하는 대신 넥슨에 경영권을 넘기는 선택까지 했습니다.

모든 선택이 결과적으로 최선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허민 자신도 훗날 네오플을 계속 보유했다면 훨씬 큰 게임회사가 됐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던전앤파이터가 남긴 한 가지 결과는 분명합니다.

작은 개발사가 시장의 주류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재미에 집중했을 때, 하나의 게임이 기업의 규모를 넘어 수십 년 동안 이어지는 산업적 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네오플이 만든 가장 큰 성공은 단순히 던전앤파이터 한 편을 많이 판매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새로운 게임과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강력한 IP 하나를 남겼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참고 자료

  • 포브스코리아, 「허민 전 네오플 대표 _ 20년 안에 100조원쯤 벌고 싶다」
  • 네오플 공식 홈페이지, 회사 연혁 및 던전앤파이터 18주년 다큐멘터리 관련 자료
  • 전자신문, 「콘텐츠 신화를 창조한다 – 네오플 허민 사장」, 2005
  • 전자신문, 「네오플의 제2 도약 기대하라」, 2005
  • 넥슨, 「넥슨, 던전앤파이터 개발사 네오플 경영권 인수」, 2008
  • 한국경제, 허민 전 네오플 대표 인터뷰, 2011
  • 동아일보, 허민 대표 인터뷰 및 네오플 경력 자료, 2011
  • 네오플·넥슨의 던전앤파이터 국내외 서비스 관련 공식 자료

※ 이 글은 네오플과 넥슨의 공식 자료, 허민 전 대표의 공개 인터뷰 및 당시 언론 보도를 교차 확인해 네오플과 던전앤파이터의 성장 과정을 분석한 글입니다. 던전앤파이터의 실제 개발은 김윤종 초대 디렉터를 비롯한 네오플 개발진이 수행했으며, 중국에서의 장기 성장 역시 허민 대표의 재임 기간 이후 네오플·넥슨·텐센트의 역할이 함께 작용했다는 점을 구분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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